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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유대인의 눈물로 빚은 고리

레시피오너 2025. 6. 11.

고통의 역사에서 아메리칸 클래식으로, 그리고 ‘런던 베이글 뮤지엄’까지

손에 들고 한 입 베어무는 그 고리형 빵.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향의 그 빵—베이글은 오늘날 누구에게나 친숙한 브런치 메뉴이지만, 그 기원은 뜻밖에도 유대인의 피난과 박해의 역사 속에 있다.



유대인의 생존 음식에서 시작되다

베이글은 17세기경, 폴란드 크라쿠프의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은 박해와 차별 속에 살아야 했고, 이들은 쉽게 상하지 않고 소금으로 보존이 가능한, 끓였다가 구운 원형 빵을 만들어냈다.

이 고리형 모양은 완전함, 순환, 인내를 상징하며,
단순한 식량 그 이상으로 신앙과 정체성을 지키는 표식이기도 했다.

 

 

뉴욕으로 건너간 ‘쫄깃한 마음’

19세기 말, 동유럽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민하며 베이글도 함께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로 옮겨간다.
이곳에서 베이글은 더 이상 소수 민족의 음식이 아닌, 이민자의 힘으로 꽃핀 도시의 아침 빵이 된다.

특히 20세기 초, 뉴욕에서는 유대인 제빵사 조합인 Bakers Union Local 338이 형성되어 베이글 제조를 철저히 통제했다.
손반죽, 끓이기, 돌판 구이—이 3단계 공정이 지켜져야 ‘진짜 베이글’로 인정되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변주

1950년대 이후, 베이글은 점차 크림치즈, 연어, 채소 등과 조합된 샌드위치 형태로 진화한다.
이후 다양한 시즈닝(에브리띵 베이글, 블루베리, 시나몬 등)이 등장하며 단순한 종교적 기호에서 대중적 디저트·식사용 베이커리로 완전히 변모했다.

베이글은 뉴욕을 넘어 LA, 토론토, 런던, 그리고 서울까지 퍼져나갔다.
지금 당신이 먹는 그 베이글은, 사실상 전 세계를 여행한 고리인 셈이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 고리를 전시하다

서울 익선동 한복판에 들어선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그 이름부터 이미 선언적이다.
단순한 빵집이 아닌, 베이글이라는 음식이 가진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는 브랜드 공간을 지향한다.

버터풍미가 진한 반죽, 현대적 감각의 필링 조합,
그리고 입구에서부터 베이글이 예술품처럼 진열된 방식은
“이건 그냥 먹는 빵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고리다”라는 브랜드 철학을 보여준다.

익선동, 안국, 강남을 중심으로 번져가는 ‘베이글 전시 공간’의 확장은,
어쩌면 베이글이라는 음식에 담긴 수백 년의 시간과 세계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현대적 재해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 조각을 씹고 있다

쫄깃한 식감, 고소한 풍미, 그리고 고리형태의 단순한 모양 뒤엔
살아남기 위해 빚은 손,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고집,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새 아침을 시작하려던 희망이 담겨 있다.

베이글은 단지 ‘맛있는 빵’이 아니다.
그건 유대인의 눈물과 뉴욕의 이민자 정신이 응축된, 세계적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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